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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키우는 행복한 달서구. 달서구 어린이 구청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우리고장에는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을까요? 옛날과 오늘날의 모습도 비교해보세요. 내가 태어난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 보아요.

옛날옛적에

우리고장 달서구는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대구의 서편지역으로 두류산, 대덕산(앞산), 와룡산, 청룡산이 있으며 또한 진천천, 대명천 같은 작은 개울들로 인해 기름진 들판이 많아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선사(역사가 기록되기 이전)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어요.

신석기시대

농사나 사냥을 위해 돌을 갈아 만든 농기구, 무기 등을 사용하였으며, 지금으로부터 약 5천년 전 시대를 말해요. 대표적인 유물은 간석기(갈아 만든 석기)와 빗살무늬토기입니다. 수성구 상동에서는 빗살무늬토기 편이 출토되었고 북구 서변동도 빗살무늬토기와 집석유구 및 움집터가 발굴되었습니다. 현재까지의 발굴유적을 보면 이 시기의 사람들은 사냥과 채집 외에 식물재배, 가축사육을 주생업으로 하게 되고 대개 하천변 가까이에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돌을 사용하던 이전과는 달리, 최초로 구리를 주원료로 하여 주석이나 아연, 납 등을 섞어 청동기구를 만들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기원전 10세기경(기원전 900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이 시기의 사람들은 강가의 언덕, 구릉에 움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어 대가족 단위로 살면서 집자리, 무덤, 무늬없는 토기, 청동기 등을 남겼으며, 대구에서는 달서구 월성동, 진천동, 상인동, 남구 이천동에서 청동기시대의 유적(고인돌)이 발견되었어요. 청동기시대

무늬없는 토기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로 무늬가 없고 대부분 황갈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며 대구지역에서는 작은 단지형 토기, 항아리, 손잡이 달린 토기, 붉은 간토기 등이 발견되었어요.

고인돌(지석묘)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무덤형태로, 대개 큰 돌들을 기둥으로 삼고 그위에 넓적한 돌을 얹어서 만들었으며 상인동, 진천동, 이천동, 시지동 등에서 다양한 모양들이 발견되었어요.

삼국시대

삼국시대 때의 대구는 ‘달구벌’로 불리다가 신라 제35대 경덕왕 때(757년)부터 ‘대구’라고 불리게 되었고 이 시기에 임휴사, 동화사와 같은 큰 절과 불상 등 많은 유물이 만들어져 불교문화가 번창하였던 것을 알 수 있어요.

조선시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대구는 정치·군사·학문·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하였으며, 비옥한 평야지대를 끼고 있어 인구가 늘어나면서 1448년(세종30년)에는 어려운 백성을 돕는 관청인 사창(社倉)이 전국 최초로 대구에 설치되었어요.
조선중기인 1601년(선조34년)에는 경상감영이 설치되면서 대구는 영남지방의 명실상부한 교통·군사·행정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고 해요.

사창제도

곡식을 모아두었다가 흉년이 들거나 굶는 백성이 있을 때 곡식을 빌려 주는 제도입니다.

경상감영

조선시대에는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각도에 관찰사(현대-도지사)를 두어 다스렸는데 관찰사가 일을 보던 곳이 '감영'입니다.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이 우리나라에 강제로 부담시킨 빚을 국민 스스로 갚아 나라를 지키자는 국채보상운동이 1907년 대구에서 제일 먼저 일어났으며,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의병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1960년 대구에서 일어난 2.28 민주학생의거는 불의와 부정에 대항한 대구시민정신으로 4.19 민주혁명을 일으키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 들어 섬유산업이 크게 발달하면서 서울, 부산에 이어 3대 도시로 발전하여 왔습니다.
대구시는 1981년 대구직할시로 승격한 이후, 1995년 달성군 일부를 흡수하여 대구광역시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현재는 면적 883.68㎢, 인구 250만 여명이 살고 있는 대도시로 세계 여러나라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채보상운동

일본에 진 빚을 국민의 힘으로 갚아 경제적으로 독립하자는 운동으로 1907년 서상돈, 김광제 등이 대구에서 금주와 금연으로 나라의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회를 조직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2.28민주학생운동

1960년 자유당 정권의 횡포와 부패에 맞서 학생들이 민주적으로 저항한 운동입니다.

담당자 :
황필상
전화번호 :
무료수신전화053-667-3232
※ 전화번호를 누르시면 담당자와 무료로 통화를 하실 수 있습니다.
담당부서 :
평생교육과
최근자료확인일 :
2017.11.14